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리비아 내전 (문단 편집) === 트리폴리 진격 === 7월 16일 동부지역의 시민군은 브레가를 향해 공격을 개시해 4일만에 브레가를 장악하였다. 이로서 시민군은 리비아 동부지역의 유전 전체를 연결하는 공급망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그러나 정부군은 브레가에서 물러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브레가 탈환을 위해 한 달 넘게 공격을 가하며 저항하였다. 한편 나푸사 산맥의 시민군은 8월 6일 다시 한 번 비르 알 가남을 점령하기 위해 야프란을 시작으로 공세에 나섰다. 엄청난 포병 화력을 동원해 정부군을 몰아붙인 시민군은 드디어 8월 15일 비르 알 가남을 점령하였다. 시민군은 기세를 몰아서 지중해안까지 진출하기 위해 진격에 나섰다. 브레가 일대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동부 시민군과 달리 나푸사 산맥 시민군은 나토군의 공습 지원을 받으며 순조로이 진격하였고 8월 16일부터 트리폴리 일대의 주요 거점을 장악하여 트리폴리로 통하는 보급선을 차단하는 작전에 나서 18일 트리폴리 서쪽으로 40Km 떨어진 위성도시 알 자위야를 장악하는데 성공하였다. 시민군의 공세로 트리폴리까지 위기에 처하자 정부군은 13일 [[스커드]] 미사일을 동원해 시르테 인근의 시민군에 공습을 가하며 반전을 꾀하였으나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끝까지 시민군을 인정하지 않던 [[중국]]까지 18일 시민군에 물자를 지원하며 이미 대세가 뒤집혔음을 반증했다. ~~정부군이든 시민군이든 이기는 놈이 내 일등 고객~~ 8월 20일 '인어의 새벽 작전'[* 목표인 트리폴리의 별명인 지중해의 인어에서 따온 이름이다.]으로 명명된 시민군의 트리폴리 공격이 개시되었다. 나토군의 공습을 신호로 시민군은 트리폴리 전방향에서 공세를 개시하였다. 카다피측은 잠시 소수의 부대가 들어왔지만 격퇴했다고 주장했지만...22일 카다피의 삼남이 시민군에 붙잡히고 장남이 시민군에 투항하고 카다피의 최정예 부대인 카마스 여단이 주둔한 기지까지 장악당했다. 트리폴리시의 두 개 공항은 시민군이 점령했지만 카다피는 거미줄 같은 지하 땅굴을 통해 트리폴리를 탈출했다. 한편 카다피의 차남이 체포당했다는 초기의 소식은 오보였고 장남은 억류된 곳을 습격한 정부군의 도움으로 탈출했다. 2011년 8월 23일 시민군은 공식적으로 승리를 선언[* 이날부터 대사관의 기도 리비아 시민군기로 변경되었다.]했지만 카다피파는 시르테를 거점으로 강력한 저항 의지를 내비쳤다. 내전의 향방은 시르테로 옮겨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